돈으로 구원을 샀다. 카드사 혜택 할인이랑 이런저런 마일리지를 더해서 한 삼백 정도. 엄밀히 말하자면 내 돈이 아니기는 했다. 택배 송장에 적힌 이름의 주인은 공이었다. 이렇게까지 큰 돈 쓸 필요는 없지 않니, 하고 말하자 공은 코웃음이나 쳤다. 네가 뭘 모르는 거라면
돈으로 구원을 샀다. 카드사 혜택 할인이랑 이런저런 마일리지를 더해서 한 삼백 정도. 엄밀히 말하자면 내 돈이 아니기는 했다. 택배 송장에 적힌 이름의 주인은 공이었다. 이렇게까지 큰 돈 쓸 필요는 없지 않니, 하고 말하자 공은 코웃음이나 쳤다. 네가 뭘 모르는 거라면서, 나는 여유가 되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라면서, 어쩌고저쩌고. 아무리 생각해도 친구 사이에 쓰기에 삼백은 지나친 것 같은데 허리에 손을 얹은 공이 너무 뻔뻔하고 당당해 보여서 그냥 할 말을 삼켰다. 그냥, 딱 봐도 설득 안 될 것 같은 표정이나 상태라는 게 단숨에 보이고 막 그래서.
나보다 큰 택배를 앞에 두고서 든 생각은 그거였다. 요즘은 구원도 새벽 배송이 되네. 시킨 지 이십사 시간도 안 됐는데 성큼 도착해버리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도 채 마치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끙끙거리면서 집안에 들인 그 커다란 상자를 뜯지도 못하고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는 까닭은.
“뭐해. 얼른 뜯어.”
공이 옆에서 한 마디 했다. 상자 사진을 찍어 보내고서 도착했는데 이거 어떡해, 하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다리에 모터 단 사람처럼 달려온 참이었다. 자리가 없어 소파에 비스듬히 눕혀둔 상자에 기대고서 공이 택배를 두어 번 툭툭 쳤다. 텅, 텅, 하고 안쪽에서 빈 소리가 났다. 커터칼을 손에 든 채로 가만 서 있자니 공이 다시 재촉했다. 뜯으라니까 그러네.
“뜯으면 반품 못 하잖아.”
“내가 안 왔으면 반품했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싸.”
“내 돈인데 왜 네가 비싸느니 마느니야?”
그러다가 손을 척 뻗고는 하는 말이,
“칼 이리 내. 네가 안 할 거면 내가 뜯을 거야.”
공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고 그 고집스러운 표정에서는 일견 결의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알았다. 진짜로 그럴 셈이라는 걸. 하기야 공은 항상 그랬다. 거침없고. 망설임도 없고. 한 번 정하면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 돌아보지 않는 사람. 후회 같은 것도 안 할 것 같고, 항상 이것 아니면 저것, 검정 아니면 하양인. 그래서 선택이라는 게 그렇게나 쉬울 수 없다는 것처럼 구는 사람.
하는 수 없이 택배 앞에 앉았다. 상자를 포장한 종이 테이프에 칼을 가져다 대고서도 공 눈치를 한참이나 봤다. 빨리, 어서, 서둘러, 따위의 재촉을 배경 음악 삼아서 칼을 쥔 손에 힘을 줬다. 테이프는 잘린다기보다는 뜯기는 것에 가까운 소리를 내면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양 옆을 먼저 가르고 중간을 짚어 손을 쭈욱 내렸다. 닫힌 상자의 날개를 한 손으로 누르면서 공을 보았다. 턱을 괴고 날 보고 있었다. 평온하다 못해 심드렁한 얼굴.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묻자 단숨에 이마를 일그러트리고선,
“뜯어놓고 뭘 굼벵이처럼 굴어.”
이어지는 매서운 지적에 나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상자 날개에서 손을 떼고야 말았다. 닫혀 있던 세계의 문이 열린다거나 가려졌던 비밀이 드러난다거나, 그런 거창한 묘사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모습으로 상자가 벌어졌다. 백열등의 하얀 빛이 내용물을 비추었을 때 공은 욕설을 내뱉었고 나는 숨을 멈췄다.
“어쩐지 싸더라. 사기꾼 자식들. 아,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공의 투덜거림과 스마트폰을 찾으려는 부산스러운 움직임, 쏟아지는 백열등의 눈 아픈 빛과 반질거리는 표면. 손을 뻗어 뺨을 감싸 들었다. 눈 감은 얼굴을 나보다도 높은 위치에 올리고서 한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요즘에는 구원도 자가 조립형이구나.
세상만사를 꿰뚫는 문장 하나를 고르라면 그건 아마도 꿈보다는 해몽이라는 격언일 것이다. 포장재라는 건 유구하게 중요해서 사물과 상품, 하다못해 사람까지도 열심히 겉을 꾸미는 시대였다. 비단 외형에만 국한한다기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알맹이를 꾸미거나 적어도 그 알맹이를 꾸민 것처럼 포장하는 일이 이제는 당연해졌다.
바로 그런 시대에 부도난 회사가 하나 있었다. 그 회사는 사람을 닮은 로봇, 쉽게 말해서 휴머노이드를 주로 팔았는데, 놀라운 기술력과는 별개로 인간과 지나치게 닮았다는 점이 부정적으로 소문을 타는 바람에 매출이 바닥에 처박혀버렸다.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사장은 유명한 컨설팅 업계로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토로했고 며칠 뒤 회사명부터 마케팅 방식까지 통째로 뜯어고쳤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구원’이었다. 지정 대상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동일한 휴머노이드. 홍보에서 내건 문구는 간단했다. 마이 온 레스큐(My Own Rescue).
이 구원은 대체로 고립된 청년 혹은 중장년 위주로 불티 나게 팔렸다. 동의서만 있다면 완전히 동일한 대상을 생성한다는 발상은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지적이 한 차례 뒤늦게 인트라넷을 달구었고, 덕분인지 때문인지 파급력은 더욱 커졌다. 구원이 성공하자 다른 회사들에서도 비슷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공이 산 것은 개중 가격이 비교적 싼 대신 스스로 조립해야 하는 보급형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