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16건 1 페이지
  • 3
    마피아물...?
    2026-02-07

    이건 뭘까?

    절창
    3
    관람일 2026-02-07
    국가 한국
    장르 마피아물...?
    감독 구병모
    출연 문오언 외

    리뷰

    이건 진짜 뭘까?

    ...

    왜 유명햇던 걸까? 구병모 작가 거라서?

    하..........................

    그냥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소설 읽는 느낌이었음 네이버 블로그나 텍파로 공유되던 그런...

    재미 없었다는 게 아니야 근데 이... 이 책을 써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걸까? 왜 하필 이 책을 쓰게 됐을까? 그니까 그래서 결국 상처를 만지고... 능력이 점점 쇠퇴하고... 이런 게 결국 무슨 의미가 있는데 스토리에서?...

    읽으면서 너무... 재미와는 별개로 어 너 그거 스톡홀롬 증후군이야 병원 가야 돼 <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음

    이 책을 왜 쓰려고 하신 걸까? 아니 왜 쓴 걸까 구병모 작가는 절창을 대체 왜 쓴 걸까

    결국 홍보했던 상처는 뭐... 어쩌고의 누룩이다 이게 대체... 의미를 가지는 것도 같습니다 다시 생각하면 근데 딱히... 이런 인소 감성...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깊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네요...

    노식.

    그래도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취향이 아니었을 뿐...

    아니 근데 대체 이 소설이 시사하는 바가 뭐지 대체 왜 이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셨는지 무슨 생각으로 구상하셨는지가 걍 ㅈㄴ궁금하다


    (+궁금해서 교보문고 후기 찾아봤는데 신기하네요

    그냥 요즘 20대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 같음... 내용은 딱히 없지만 재미는 있는... 그런...

    그냥 포타(라고 시사되는 팬픽) 읽는 것 같네요...

    그게 나쁘다고 말하려는 거 X, 내가 기대했던 건 이게 아님 O

    쓰다 보니 열 받아서 0.5점 더 깎음)

  • 2.5
    SF
    2026-01-20

    눈을 뜨세요 용사여

    아바타 : 불과 재
    2.5
    관람일 2026-01-20
    국가 미국
    장르 SF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조에 살다나, 샘 워딩턴 외

    리뷰

    봤다.

    잘 모르겠다.

    그냥 졸라 울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는 게… 내가 다 억울하고 슬퍼서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

    인간vs나비 결전 부분에서 눈물이 눈물이 그렇게 났다… 거기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야 한 걸까

    근데 그 이후로는 짜게 식음

    제임스 카메론 씨는 그렇게 멋진 여캐를 뽑아놓고서 왜 그런 식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가…


    "내가 바로 불이다!(I am the Fire)"라는 개아름다운 명대사를 뽑아준 미친 여캐를 갑자기 남캐 여친으로 만들어버리더니 존재감이 확 죽어버리고

    그 뜬금없는 애 낳는 씬은 왜 넣은 것이며… (아니 심지어 영화의 메시지랑 일관성이 있지도 않음)

    유일하게 좀 평타 친 건 네이티리? 그 친구 사용법인 듯 어머니가 그렇게 섹시해서 어떡하지… 나 유부녀콤 잇는데(미안)


    여캐 활용만 조금 더 잘했더라면 내용이 훨씬 풍부해졌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아쉬움

    지금 아쉬운 점 꼽다가 별점 1.5점 더 깎았다

    그렇지만 나쁘지는 않았어요… 킬링타임용으로도 깊생용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을 듯? 특히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보면… 예… [이하 생략]

    1편이랑 2편도 궁금해서 보려고

    근데 이제 거꾸로 2편 보고 1편 볼 것임(ㅋㅋ

  • 5
    게임
    2026-01-22

    집으로

    5.0 후기
    5
    관람일 2026-01-22
    국가 일본
    장르 게임
    감독 요시다 나오키
    출연 빛의 전사, 새벽의 혈맹 외

    리뷰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건 확실하다.


    칠흑의 반역자는 오타쿠라면 싫어하기 힘든 확장팩이라고들 알고 있었어서 처음 밀 때도, 두 번째 밀 때도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그 기대를 정말 완벽하게 충족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를 반긴다… 칠흑은 진짜 어떻게 만든 거냐? 이상하다 너네 파판14팀 아니지 잠깐 접신했던 거지(미안)


    스토리적으로 좋았던 부분. 낭비되는 캐릭터들이 없다. 특히 NPC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게 확 느껴진다. 다른 확장팩들보다도 칠흑이 NPC들 사용에 조금 더 세심한 편인데, 모브가 아닌 조연 수준이 된다면 스토리에서 다들 무언가를 해낸다. 빛의 전사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제 발로 뚜벅뚜벅 나아간다. 당장 생각나는 NPC만 하더라도 차이 부부, 카이 시르, 붓을 주었던 화가, 조선소 사람들, 기타 등등… 허투루 쓰이는 캐릭터가 하나 없다. 한번 등장한 이상 정말 골수까지 빨아먹겠다는 의지까지 엿보일 정도로 철저하게 짜여 있었다.


    두 번째로는 새벽의 혈맹 캐릭터성. 이건 아마 다들 공감할 이야기일 텐데, 새벽의 혈맹 일원들이 칠흑에 와서 캐릭터성이 확 살아났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P)… 여기서 살아난 캐릭터성이 효월과 황금까지 쭉 이어지는 걸 보다 보면 감회가 새롭고 기분이 짜릿하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런다. 그래 얘들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혜자는 에메트셀크(하데스)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조금씩 갈리던데, 나는 극호. 자세한 건 이후에 첨언하겠다.


    세 번째는 연출. 카메라워크와 음악 연출에 본격적으로 힘을 주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느껴질 만큼 홍련에 비해 연출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나는 진짜 칠흑 만들 때 제작진들 사이에서 무슨…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함…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홍련 다음에 이런 대작을 만들지? (홍련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안티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무조건적으로 칠흑 올려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내 눈에는 완성도가 정말 훌륭했고, 그 완성도에는 훌륭한 연출이 빠질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출 중 하나는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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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과 빛의 대결이었잖냐고 완전히… 새벽의 혈맹 일원이 흑백으로 변하면서 어둠에 잠식되는 와중에… 꽂히는 한 줄기 빛… 어둠에 사로잡혔다가도 그 어둠을 기어코 뚫어내는 한 줄기 빛 이 연출을 보고서 대체 어떻게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있느뇨… 적어도 나는 모른다 나는 과몰입 인간이라서(하!)


    칠흑은 결국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에메트셀크는 뭐 말할 것도 없고(미련 뚝뚝 넘치는 영감은 그렇게 해저에 가짜 집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고…) 1세계 사람들은 세상이 망해가는 탓에 본인의 거처를 최소한 한번씩은 잃었다. 비록 새로운 곳에 정착했다 하더라도 하늘을 뒤덮은 빛이 있는 한 그들은 영원히 도망자였을 테다. 에메트셀크의 말을 빌리자면, 빛 아래서 그들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죄"였다. 그래서 죄식자였던 거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죄라면, 산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고, 그 죄인을 잡아먹는 것이 죄식자니까. 그리고 죄인이 있는 곳은 감옥이지 집이 아니다. 빛 범람에 뒤덮인 1세계는 말하자면 감옥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둠의 전사 일행은 모험을 거듭하며 에메트셀크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살아 있는 것은 죄가 아니다." 테슬린 에피소드에서 그게 제일 명확하게 수면 위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것들 중에서 가치 없는 건 없어." 결국 두 이야기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살아도 된다고. 당신은 가치가 있고, 당신의 삶은 죄가 아니니, 살라고.


    그런데 기 위해선 의식주가 필요하다. 먹고 입을 것은 대체로 자력으로 해결 가능하다. 그러나 사는 곳은 불가능하다. 지금 그들을 위협하는 건 특정한 공간이 아닌 세계 그 자체니까.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제각기 맞서 싸운다. 이 부분이 좋았다. 빛의 전사(어둠의 전사라고 해야 하나?) 일행만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NPC들은, 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제각기 살아남기 위해, 살기 위해, 희망이 이어지는 세계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다. 강력한 영웅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대신 자력으로 자신들이 있을 곳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우리의 적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씨엔 에메트셀크. 만이천 년의 집을 그리워하는 존재.


    선역과 악역이 명확히 나뉜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신념과 신념이 맞부딪히는 서사이기도 하다. 에메트셀크는 우리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결론은 항상 같다. 우리에게는 살 자격이 없다는 것. 우리가 살아남고자 하는 그 자체가 죄라는 것.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를 보았으니까. 에메트셀크 입장에서 우리는 기껏해야 개미인 거다. 어린애가 아무 가책 없이 개미를 손으로 뭉개는 것과 사람이 죽는 것, 에메트셀크에게 이 두 가지에는 큰 차이가 없다.


    누구는 에메트셀크를 소위 말하는 "세탁"해서 싫다고도 한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어떤 입장에서 본다면 에메트셀크한테도 사정이 있었어~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 하며 그가 저지른 죄를 가볍게 만드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와는 별개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에메트셀크는 결국 캐릭터다. 악역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건 현실에서의 이야기다. 서사 없는 캐릭터는 존재할 수 없고, 만일 존재하더라도 지나치게 일차원적이게 된다. 매력적인 악역은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작법의 가장 기초 중 하나다. 이런 면에서 에메트셀크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실행했다. 그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며, 자신만의 굽힐 수 없는 신념이 있고, 그랬기에 빛의 전사 일행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칠흑은 선역이 악역을 처벌하는 이야기보다는 신념을 가진 두 존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서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존재들, 그러나 집을 공유할 수는 없는 존재들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동시에, 그리움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행동하는 이야기였다고. 그런 의미에서 수정공은 모든 NPC를 대표하는 존재라는 상징성이 크지 않을까 한다… 그야말로 과거에서 온, 그리움에서 멈추지 않고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다다른 사람이니까.


    좋다… 진짜 좋다. 진짜 너무 좋았다… 에메트셀크는 끝까지 자신은 현 인류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으면서 현 인류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맡겼다는 것, 현 인류에게 분명히 영향을 받은 구석이 있었다는 것… 그는 뛰어난 악역임과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 존재였다는 것… 그러나 동시에 동포를 그리워한 하나의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 에메트셀크와 우리(=빛의 전사 일행)는 결국 같은 것을 지키려 했다는 것… 아 그냥 너무 좋다 미친


    원 브링즈 셰도우 원 브링즈 라이트다…

  • 감독님 접으라고요

    전독시 영화 후기
    관람일 2026-01-20
    국가 한국
    장르 개똥망
    감독 김병우
    출연 안효섭 외

    리뷰

    원작 존중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절망스러운 망작

    감독은 자기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영화에다가 바를 300억으로 사람을 몇이나 구할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안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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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언.

    진짜 끝.

  • 0.5
    모성 판타지
    2026-01-16

    감독님 전공 살릴 거세요?

    대홍수 후기
    0.5
    관람일 2026-01-16
    국가 한국
    장르 모성 판타지
    감독 김병우
    출연 김다미 외

    리뷰

    감독님

    전공 살리실 거예요?

    영화 전공 시나리오 전공 아니세요?

    그럼 영화 계속 만드실 거예요?

    진지하게 관두시고 다른 거 찾으시길 추천합니다

    소재가 아주 참신하지 않은 건 아닌데 이걸 이 수준으로 재미없고 개연성/핍진성 없고 설득력 없이 말아먹는 것도 재능이다 감독 당신은 재능이 있어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능 영화를 개못만드는 재능

    아니 모성이고 어쩌고의 문제는 차치하고서 그냥 "시나리오를 존나 못 썼어"

    어디서 본 이것저것 짜집기 같고 어바등 같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되고 황당하네요

    내가 써도 이것보단 잘 쓰겠다

    감독님

    감독 그만하고 새 일 찾으세요

    적성 안 맞으시는 것 같습니다

    "존나 못 썼어"

    상징성도 창의성도 구시대적이고 구리고 제대로 표현도 못했고 개연성 핍진성 이런 건 개를 줘도 안 먹을 수준이고(개한테 미안해야 함) 그냥 네... 네 그냥 예 그러를 그러세요 그러를 그래 그러를 그러는 거야 그러를 그러세요

    길게 쓰기도 아깝다

    가세요 걍 꺼져

    반대로 전독시는 얼마나 말아먹었을지 기대가 되네요


    별점 0.5도 아깝다

  • 4
    영화
    2025-12-31

    성부와 성좌와 성령의 이름으로

    콘클라베
    4
    관람일 2025-12-31
    장르 영화
    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
    출연 레이프 파인스 외

    리뷰

    추가됨...

    그치만좋앗음

  • 5
    애니메이션
    2025-12-27

    고작 10년이라는 것

    장송의 프리렌
    5
    관람일 2025-12-27
    국가 일본
    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야마다 카네히토(원작) , 사이토 케이이치로 (애니메이션)
    출연 -

    리뷰

    잠도 안 오고 할 일도 딱히 없어서 쓴다. 장송의 프리렌 후기.


    우선 나는 원작을 안 봤다(!). 원작도 물론 좋다지만 애니메이션이 진심 진국으로 뽑혀서… 뭔가 이 감상을 해치고 싶지 않은 느낌? 잘 만들었기 때문에 원작이 기대되는 매체가 있는가 하면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에 원작을 보고 싶지 않게 되는 매체도 있는 것 같음. 나 같은 경우 프리렌은 후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디에 결격 사유가 있는 건 결코 아니고.


    그냥… 굉장히 과감한 스토리라고 생각했음. 고작 10년. 보통 마왕을 처치하기 위한 용사 파티의 여정을 담는 것이 전형적인 정통 판타지인데, 프리렌은 아주 약간의 발상의 전환을 주었다. 시작하자마자 용사 파티는 왕국으로 돌아온다. 마왕을 처치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어느 세월과의 이별을 고하는 이 작품은 주인공이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하는 엘프이기에 한때의 작별을 또 다른 시작으로써 사용할 수 있다.


    고작 10년… 사실 이 말에 공감하기도 하고 영 모르겠기도 하다. 인간인 내게 십 년은 정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결코 적은 세월은 아니니까. 하지만 주인공인 프리렌에게는 아니다. 그에게 십 년은 고작 눈 깜빡할 새에 지나는 시간이다. 정말로 고작 십 년인 것이다. 용사 파티 일원 모두가 십 년 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을 때, 프리렌은 고작 십 년이었는데 뭘, 하는 건조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 고작 십 년은 사람을 바꾼다. 힘멜이 죽었을 때 프리렌은 눈물을 흘린다. 고작 십 년. 인간이 짧은 삶을 산다는 걸 알았는데 왜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 어린 말을 하면서.


    죽은 존재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결국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건 역행이 불가능한 돌진이다. 걷잡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 사람은 지나치게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죽는다. 비단 사람뿐이 아닌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다. 죽음은 가장 궁극적이고 완전한 형태의 단절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체험해야만 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죽음은 개중 가장 대표적인 하나인 것 같다.


    단절이라는 게 이렇게 사무치는지 겪어보기 전까진 몰랐다.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정말로 힘내야겠구나 싶었다. 동시에 그런 마음도 드는 것이다. 후회가 안 남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프리렌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그 대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사실 본편을 전부 애니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만 접한 입장에서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단지 프리렌은, 우악스럽게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눈앞에 들이미는 대신, 잔잔한 작화와 잘 맞아 떨어지는 음악, 그 행간과 여백 사이사이에 메시지를 보물찾기하듯 숨겨둔다. 죽음이라는 건 필연적인 것. 결국 모두 우리를 떠나고 우리 또한 모두를 떠나게 된다. 후회를 최대한 덜 수 있도록 우리는 서로를 필사적으로 알아가야만 한다고.


    죽음이라는 외로움에 굉장히 집중한 내용이다. 애니메이션의 초중반부는 더더욱 그렇다(보통 1쿨이라고 부르는 부분). 이전에는 정말 별 생각 없이 보았는데, 지인분의 타계 이후 충동적으로 다시 켰을 때는 1화와 2화를 보면서 거의 통곡하다시피 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더라… 평점에서 4.5점까지는 객관적인 시점이지만 5점은 마음이 공명해야 나오는 점수이므로 주관적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장송의 프리렌만큼 5점이라는 평점이 어울리는 창작물은 드물 듯하다.


    게다가 프리렌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과 사유가 자유로운, 느슨하고 여지 많은 창작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렌은 내 이데아 같은 존재였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프리렌의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회차였다. 늘그막 드워프인 폴 영감과 프리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밥 먹으면서 보고 있었는데, 그때 불현듯 깨닫게 되더라. 내가 왜 장송의 프리렌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도 거기서 나온다.

    그렇군. 드디어 마왕을 잡으러 가는구나.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좋겠군.

    보면서 깨달았다. 이전에 혼잣말처럼 쓴 적도 있지만… 또 기록을 남긴다. 나는 맥락에서 오는 묵직한 감정과 그것을 정확히 은유한 창작물이 좋다. 맥락이 거세된 사회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당장 유행하는 챌린지나 숏폼만 보아도 특정 부분만 잘린 채 돌아다니거나, 애당초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내용이 욱여넣어져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앞뒤 맥락이 맞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촘촘한 여백과 창작자가 그 여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은유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대사 등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이것이 아마 내가 프리렌을 한층 더 사랑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한다. 장송의 프리렌은 스토리 내내 끝없이 여지를 주고, 여백을 드러내지만, 그것이 단순한 실수라거나 공백이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필요한 때가 온다면 거침없이 그 여백을 수면 위로 끌어냄으로써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프리렌도 완벽하지는 않다. 한번 트위터에서 플로우가 돌았던, "인간을 모사하는 죽여야만 하는 존재"라는 설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나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뭐랄까… 완벽한 창작물은 없고 그렇다고 장송의 프리렌이 일부의 설정이 창작물 자체의 메시지를 훼손하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시선). 게다가 앞서 말했듯 나는 장송의 프리렌이 주는 잔잔한 분위기와 촘촘한 맥락에 의한 스토리, 그리고 주제에 몹시 탄복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병크가 터지지 않는 이상 남들한테 당당히 추천하고 다닐 것 같다.


    이별을 겪은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번에 1월 16일 즈음 2기가 나온다고 한다. 10화뿐이라는 게 너무 섭섭하지만… 1기 때의 퀄리티를 그대로 유지해서 들어와주었으면 좋겠다. 2기를 보고 난 후에도 후기를 적어야지.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한번쯤 봐주셨으면 한다… (커비한테 워낙 졸랐더니 같이 1화 봐줬음… 고마워요)

  • 4.5
    영화
    2025-12-28

    뒤돌아봐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4.5
    관람일 2025-12-28
    국가 프랑스
    장르 영화
    감독 셸린 시아마
    출연 아델 에넬, 노에미 메를랑 외

    리뷰

    개봉한 당시에 한창 좋아하던 영화였다. 그때 당시에 워낙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어서 특히나 더 좋아했는데, 미장셴도 예쁘고 내용도 오래 생각하게 되어서 영화관에서 두세 번쯤 본 기억이 있다. 뭐 이것저것 말하기에는 시간도 늦었으니 간략하게만 말할 테지만… 다들 한번씩 봐주었으면 하는 영화다.

    일단 미장셴이 너무 좋다. 전체적으로 영화 자체의 색감이 약간 빛바랜 유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의도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작중 주인공인 마리안이 유화를 다루는 화가라는 걸 생각한다면 정말 의도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고. 동시에 색감을 아주 잘 썼다는 건 등장인물들의 옷 색깔 등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치밀하다.
    파랑과 빨강의 대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커비의 후기를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요약하자면 영화 시작, 현재의 시점인 마리안은 우울함을 의미하는 파란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영화 본편, 과거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붉은 옷을 입는다. 반대로 아가씨인 엘로이즈는 과거 내내 푸른 옷을 입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초록 옷을 입는 비중이 늘어난다. 옷이 등장인물들의 심경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섬세하게 설계된 장치는 비단 옷뿐이 아니다. 영화 내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라는 기표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데, 개중 가장 대표적인 의미가 사랑일 성싶다. 여자들의 축제에서, 영화 중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배경 음악이 깔리던 순간, 엘로이즈의 치맛자락에 불이 붙는다. 이후 영화 속에서 엘로이즈는 그때를 콕 집어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불은 걷잡기 쉽지 않다. 사람이 두엇 달라붙어 불을 끄려 들었지만, 그 여파로 엘로이즈가 넘어진다. 걷잡기 힘든 사랑에 발목 잡힌 엘로이즈의 미래를 암시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마리안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그리게 될 만큼 강렬히 기억하는, 아마도 사랑을 자각한 순간이 아닐까 싶고.

    표면적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대담한 영화다. 하지만 그 내부를 뜯어 살펴보면, 더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 다만 페미니즘적 메시지, 영화에서 다루는 여성상과 그들이 비판하는 남성성 권력과 가부장을 논하기엔… 지금은 새벽 다섯 시 이십사 분이고 나는 너무 지쳤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빼놓고 이 영화를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래서 표면만 살짝 핥고 지나가야겠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재해석하는 것도 그렇고, 그림에는 관습과 이념이 있지만 생명력과 존재감은 없지 않냐고 비아냥거리던 것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굉장히 도발적인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걸 처음 봤을 때보다는 온건한 관점을 지니게 된 나지만, 뭐랄까… 오랜만에 보니 상당히 강력한 메시지를 내재한 영화라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역시 제목을 차지한 "뒤돌아봐요."에 관한 이야기. 서술되지 않았던 에우리디케의 자율성을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엘로이즈의 대담함이 엿보인다. 마리안은 오르페우스로, 에우리디케는 엘로이즈로 빗대어지는 이 영화 속에서, 어쩌면 엘로이즈의 마지막 말이었던 "뒤돌아봐요."는 마리안을 향한 엘로이즈 최후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서 이별이라고. 떠날 때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끝은 내가 정하겠다고.
    어쩌면 그래서 나는 엘로이즈가 엔딩 장면에서 마리안을 보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질문한 것은 엘로이즈다. 마리안은 공연 내내 엘로이즈를 바라보았다. 엘로이즈는 눈을 돌리지 않았고, 따라서 마리안은 "그녀는 날 보지 못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보지 못했다는 건,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를 붙잡지 못했다는 건, 엘로이즈가 영화 중반에 "어쩌면 본인이 말했을지도 모르지. 뒤돌아봐요." 라고 말함으로써 제시했던 에우리디케의 자율성, 자유 의지를 위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엘로이즈는 선택한 것이다. 바라보지 않기를. 벅차오르는 관현악기와 함께 점점 눈물을 흘리는 엘로이즈를 보며 속절없이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멋대로 생각해도 좋지만, 나를 비난하지는 말아요."
  • 4.5
    영화
    2025-12-27

    내게 너의 심장을 줘

    하울의 움직이는 성
    4.5
    관람일 2025-12-27
    국가 일본
    장르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

    리뷰

    나중에 추가됨...

  • 4
    영화
    2025-12-25

    닿지 못할 곳으로

    천공의 섬 라퓨타
    4
    관람일 2025-12-25
    국가 일본
    장르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

    리뷰

    영화뿐이 아니라 이 경험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떠들면서 영화 보기라니! 너무 즐거웠어🥹 앞으로도 다른 영화들 많이 많이 봐야지. 같이. 커비 덕에 항상 즐겁다…


    천공의 섬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수많은) 대표작 중 하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다(ㅋㅋ).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는 정말 대표적인 것, 이를테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만 보거나, 최신에 개봉한 작품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정도만 봤다. 개인적으로 챙겨본 건 최근의 마녀 배달부 키키랑, 예전부터 좋아했던 모노노케 히메, 이제는 기억이 잘 안 나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정도? 막상 본 건 나름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유명한 것만 몇몇 개 챙겨본 수준이라 어디 가서 말하기는 좀 부끄럽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도 알 수 있듯,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그만 좀 싸우고 더불어 살아가라. 이러한 메시지에는 미야자키 감독의 성장 배경 같은 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겠지만, 거기까지 알아보는 건 차차 하고. 우선은 이 벅차는 마음부터 풀어놔야겠다.


    영화 내내 수많은 등장인물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천공의 섬인 라퓨타를 쫓는다. 라퓨타는 칠백 년 전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하늘을 떠도는 섬. 창작물에서 옛 문명이 으레 그러하듯, 현대 문명으로는 쫓아갈 수 없는 기술의 집합지였다. 라퓨타도 마찬가지다. 캐릭터들은 라퓨타에 닿기를 원하고, 결국 후반부에 가서는 직접 닿는 데에 성공하기까지 한다.


    라퓨타는 하늘을 나는 존재, 즉 작중 하늘을 대표하는 존재다. 반대로 라퓨타를 쫓는 존재들, 즉 인간은 제 힘으로는 날 수 없는,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존재들이다. 즉 땅을 대표하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깊은 땅, 광산 마을에서 와 땅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존재가 있다. 바로 파즈다. 반대로, 인간 중에서 라퓨타와 가장 가까운 존재는 시타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쭉 나열한 것이 바로 이 영화다. 만난 지 고작 몇 시간, 기껏해야 며칠인 이들이다. 그들의 유대감은 기이할 정도로 짙다. 영화적 허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라퓨타로 대표되는 하늘은 결국 이상이다. 현대 인류가 닿지 못한, 그래서 원하게 되는. 인류는 라퓨타에 닿기를 원하고, 그곳에 수많은 보물, 또는 세상을 호령할 힘이 있다고 믿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인류는 본디 날 수 없다. 그들에게 날개는 허락되지 않았기에 철골과 천으로 이루어진 비행선에 몸을 의탁해야 한다. 인류는 자의로 땅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렇기에 그들은 이상과 반대된다. 즉 현실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기표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인 시타와 파즈는 어떨까? 기표는 서로에게 달라붙어 영화 내내 영향을 끼친다. 캐릭터도 매한가지다. 라퓨타와 가까운 시타는 이상을, 땅과 가까운 캐릭터인 파즈는 결국 이상과 현실이라는 의미를 대표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난 지 고작 몇 시간, 기껏해야 며칠인 두 사람이 이상하리만치 쉽게 친해지고, 또 끈끈해진 것은. 이상과 현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자라는 내내 꿈을 꿔야 한다고 배우며, 또 실제로도 꿈을 꾼다. 우리는 매 순간 파즈이며, 또 동시에 매 순간 시타가 된다. 땅에 발을 디딘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러며 소원을 바라는 순간, 우리 속에서는 파즈와 시타가 서로 손을 잡게 된다. 파즈와 시타가 동시에 우리를 대표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영화는 한층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무스카 또한 라퓨타 왕족인데, 그럼 무스카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이러한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두가 우리를 조각 내어 부풀린 것에 가깝다고. 이상을 바라는 존재, 현실적인 존재, 힘을 바라는 존재, 보물을 바라는 존재 등등. 그렇기에 비로소 라퓨타에서 일어난 비극이 더욱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대표하는 수많은 캐릭터가 제각기 이상을 향해 손 뻗다가 그른 선택을 내리고, 결국 몰락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누군가는 추락했고, 누군가는 비행선을 잃었으며, 누구는 두 눈이 먼 채로 사라졌다. 다만 이 사건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조금이나마 쟁취한 캐릭터들이 있었는데, 이 캐릭터들은 선역이라고 묶을 수 있는, 즉 '타인을 도운' 존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나치게 이상을 쫓으며 타인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몰락일 뿐이다.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만일 이상이 타인을 해치는 도구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거리낌 없이 파괴해야 한다. 시타와 파즈가 그러했듯이. 맹목적으로 쫓던 이상을 놓아주고, 서로 힘을 합쳐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망설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상을 놓아주는 순간, 이상은 뜻하지 않은 순간 우리를 지탱해줄 것이라고. 라퓨타의 커다란 나무 뿌리가 추락하는 시타와 파즈를 구해주었듯이 말이다.


    어쩌면 이상은 이상에 불과할 때 가장 아름다울지 모른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막상 꿈꾸던 것을 쟁취하고 보니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고. 천공의 섬 라퓨타도 결국 비슷한 말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던 라퓨타의 정원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연주의는… 음.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유명하니까. 예쁘고 반짝이고 아름다운, 말 그대로 이상적인 정원이었던 그곳에서 인간의 발자취는 오래전 끊겼다. 칠백 년 만에 찾아온 인간들은 고요하던 라퓨타 성을 헤집고 훼손했다. 단적으로 보았을 때 이건 미야자키가 바라보는 인간의 탐욕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을 혐오하는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을 불신하는 동시에 그들을 믿는다. 모순적이지만 모두가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돌이킬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설령 이전과 다른 형태로 변모한다고 하더라도.


    이것과 별개로 좋았던 건 역시 도라 할머니!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한 노년의 여성 캐릭터, 그런데 모험 활극의 주연이라니. 요즘에도 이런 세련된 캐릭터가 잘 안 나올 것 같은데. 게다가 새삼 좋았던 건, 내내 해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보물을 찾고자 했던 도라가 마지막에 라퓨타에서 훔쳐 온 보물을 꺼낼 때였다. 보물을 조금밖에 훔쳐오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 장면에서, 어쩌면 시타와 파즈 또한 도라의 보물에 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라퓨타 속 캐릭터들은 미련없이 떠났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나는 아직 여기에 남아 있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였어. 이상이나 신념에 사로잡힌 인물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때때로 이상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포기하는 순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놓아준 이상이 우리를 도와주리라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 나름의 위로와 인류를 향한 기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정말 좋았다. 오래오래 곱씹게 될 것만 같다.

  • 3.5
    영화
    2025-12-20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

    마녀 배달부 키키
    3.5
    관람일 2025-12-20
    국가 일본
    장르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

    리뷰

    마녀 배달부 키키. 딱 한 번 봤다. 어제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지인 추천이었는데(고마워요), 정신 놓고 멍하니 볼 수 있을 만한 좋은 영화였다. 그런데 이후로 끊임없이 이 내용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고… 하는 생각들이 멈추지를 않는 바람에. 이럴 거면 좀 정돈해서 후기를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남긴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하는 게 좋을까. 흠… 일단, 개인적으로 나는 마녀 배달부 키키는 자아를 확립하는 시기의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게 설령 사춘기든, 낯선 타지, 타국에 나가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 사람이든 간에. 어쩌면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사람, 또는 슬럼프가 온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떠들기에 앞서, 나는 키키와 관련한 별도의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등을 포함해서. 그러니까 여기에 쓰는 건 어디까지나 내 뇌피셜이다.

    영화는 대체로 두 가지의 큰 틀로 분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 기본적으로 내적 존재란 키키라는 주인공과 키키가 가진 것 — 마법, 빗자루, 검은 고양이 지지 — 이다. 반대로 외적 존재란 아직은 키키의 것이 되지 못한 것 — 새로운 마을, 비행선, 톰보의 자전거 등 — 이다. 영화를 진행하는 내내 이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눈으로 보이는 갈등이 아니더라도, 매 순간마다 내적과 외적 존재의 충돌은 키키를 끊임없이 고뇌로 몰고 간다.

    돌이켜 보면 키키는 외적인 존재와 얽혔을 때, 특히 마을(도시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더 적확한 어휘일지도 모르겠다)과는 대부분 그다지 즐거운 결말을 보지 못했다. 도시에서 낮게 날다가 경찰에게 붙잡혔고, 갈 곳이 없어서 마을을 떠돌았다. 내가 특히나 집중한 부분은, 도시에서 키키가 혼자서 외적인 탈 것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전거, 히치하이킹한 자동차, 버스 등을 탔지만 모두 동승자가 있었다. 키키가 유일하게 홀로 타는 것은 내적 존재인 빗자루다.

    키키의 빗자루는 마녀로서의 아이덴티티의 일종이다. 마법과 비행 또한 그렇다. 지지도 마찬가지다. 내적인 존재들은 결국 나를 구성하던 자아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던 빗자루는 부서지고, 비행 마법은 쓸 수 없게 되며, 지지와는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애당초 모험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즉 외적 존재와 엮이는 순간부터 일어난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고난은 벌어졌으므로 남은 건 순응하는 일뿐이다. 인제와서 돌아갈 수도 없고(애당초 날 수 없는데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야?), 어머니와의 접점은 영화 내내 초반부를 제외하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온전한 나의 편처럼 느껴졌던 지지마저 외부 존재, 외적 존재 중 하나인 도시 고양이와의 연애에 눈이 팔리더니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 이것이 키키가 맞닥뜨린 시련이다.

    이 시련을 넘어서는 건 결국 키키의 몫이다. 영화는 키키가 시련을 넘어서도록 조성한다. 비행선에 매달린 톰보가 바로 그 장치다. 시련을 맞닥뜨린 상태에서 키키는 톰보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안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내적 존재가 모두 흐려진 지금, 키키는 마녀라기보다는 도시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톰보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날아야 한다’.

    그 상황에서 키키는 대걸레를 선택한다. 도시 사람, 즉 외적 존재가 들고 있던 외적 존재를 흡수하여 자신의 것, 내적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걸레를 타고, 잃어버렸던 비행 능력을 도로 쟁취해 내고, 그렇게 톰보를 구출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키키는 조금 더 뒤섞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내적 존재는 나다. 외적 존재는 현실이다. 나는 나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어느 순간 우리는 현실에 뒤섞여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나를 잊게 된다. 말하자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적 존재로 무장했던, 자기 자신에 불과했던 키키가 도시에서 처음 맞닥뜨린 현실에 순간적으로 자신을 잃었다가 회복한 것처럼.

    낯선 환경에서 적응한다는 건 즉 본래의 나를 일부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환경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물론 잃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떨어져 나간 부분을 채우는 또 다른 존재/물질/기억 등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과거의 내가 가졌던 것과 일치하지 않으며, 동일하지도 않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보기에도 충분히 열려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본 관점도 수많은 해석 중 일부겠지… 그렇지만 자아 찾기 대장정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 참 좋았다. 응. 엄마의 빗자루를 받았던 초반과 스스로 대걸레를 선택한 키키의 대범함이 참 좋다.

    별개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은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었다. 비행이라는 건 결국 키키의 자아를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였는데, 그걸 톰보를 포함한 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정말로 어느 정도 둥지를 튼 느낌이랄까. 참고로 제목은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에서 따왔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쪽도 이쪽도 자아 확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데미안을 언제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나중에… 한두 번 더 보고서 조금 더 정제된 후기를 쓰고 싶긴 하다. 책은 되짚을 수 있는데 영화는 그러기가 영 쉽지 않아서. 게다가 오늘은 상태도 막 메롱이다(ㅠ). 아무튼 좋았다는 마음을 간직이나마 하기 위해서 짧게 후기를 남긴다. 25일에는 커비랑 라퓨타 보는데 그것도 기회가 된다면 후기를 남기고 싶다.

    키키야 행복하거라

    나도 행복하마

  • 4.5
    소설
    2025-06-09

    긴 고통과 찬란한 평화를 꿈꾼다

    싯다르타
    4.5
    관람일 2025-06-09
    국가 독일계 스위스
    장르 소설
    감독 헤르만 헤세

    리뷰

    사실 싯다르타를 읽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기억도 안 날 만큼 사소하다. 읽은 것도 제법 오래 전이라… 기억을 더듬어야만 한다. 일단 대충 생각나는 건 대체로 두 가지. 첫째, 기대했던 젊은 작가 책이 너무 실망스러웠다(이거는… 길게 한탄한 글이 있어서. 그런데 요즘은 또 생각이 좀 다르기는 해.). 그리고 둘째, 세문전을 언제 한번 읽어야 한다고 다짐하던 와중에 교보문고에서 싯다르타를 맞닥뜨렸다.


    사실 그때 당시 나는 "언제 한번 세문전도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 정확히 무엇을 읽겠다는 명확한 목표는 없었다. 교보문고에서 세문전을 주르륵 마주쳤을 때만 하더라도 뭘 사야 할지 고민했다. 후보군은 많았다. 유명한 1984, 유튜버가 추천해서 관심을 가졌던 헌등사, 기타 등등… 사실 원래는 헌등사를 사려고 했는데 품절이었다. 그럼 진짜 뭐 사지? 고민하던 때 마주한 게 싯다르타였다.


    싯다르타. 일단 제목을 들어만 봤다. 불교에는 조예가 깊지 않은 터라 설명이 영 애매하기는 하지만… 부처 중 하나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싯다르타를 구매하도록 이끈 건 뒷표지에 적힌 설명 문구 중 일부였다. "『싯다르타』는 헤세가 거의 일 년 반 동안 창작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정신 치료를 받은 후 발표한 작품이다. 동서양의 정신적 유산을 시적으로 승화한 일종의 종교적 성장소설로 볼 수 있는데 영원을 향한 갈망과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초월에 대한 의지를 단순하고도 서정적인 문체로 담아냈다." 이 내용을 보고서 정신 차려보니 결제한 뒤였다(…).


    앞선 글들에서도 종종 언급했지만, 나는 우울증을 오랜 시간 앓아왔다. 기억하는 대부분의 순간에서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긴 시간 동안 앓느라 기억력도 많이 저하됐다). 자해나 자살 사고는 심심하면 불쑥 올라오는… 결도 안 맞고 성격도 우악스러운데 영 떨칠 수가 없는 친구 같은 존재다. 그래서인지 고난과 시련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결국에는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성장 소설들을 좋아한다. 그래서였다. 조금 천박한 어투로 표현하자면, "헤르만 헤세가 말아주는 성장 소설을 어떻게 참는데?"


    감상을 가감없이 이야기하자면, 우선 초반부는 지루했다. 초중반까지는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 하는 생각에 눈 뻑뻑 문질러가며 읽었다. 그런데 이해는 한다. 글이라는 게 원래 도파민 터지는 구간은 후반부에 몰아 있는 게 상당히 정석적인 구성이니까(애초에 기승전결 맞춰 쓰다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고전 특유의… 여성관 같은 게 심심찮게 나오는데, 고전치고는 그래도 여성 캐릭터 사용이 굉장히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눈살을 좀 찌푸릴 수는 있어도 이것 때문에 이 책 못 읽겠어요,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완전히 매혹한 건 중후반부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가에서> 챕터 초중반 즈음. 너무… 너무 좋은 문장을 마주쳤다. 

    앞으로 나의 길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까? 그 길은 괴상하게 나 있을 테지, 어쩌면 그 길은 꼬불꼬불한 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길은 원형의 순환 도로일지도 모르지. 나고 싶은 대로 나 있으라지. 그 길이 어떻게 나 있든 상관없이 나는 그 길을 가야지. (싯다르타, 140p.g 중)

    이 문장이 정말 심금을 울렸다. 그게 정확히 맞는 표현이다. 심금을 울렸다. 미래에 관한 고민을 항상 지니고 있었는데, 이 문장이 내 불안을 조금이나마 누그러트려 주었다.


    두 번째로 좋았던 건 카말라의 죽음 파트였다. 이 부분은 지금도 오랫동안 머무르게 된다. 한참… 정말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문장이다.

    "당신은 그것을 얻으셨나요?" 그녀가 물었다. "당신은 평화를 얻으셨어요?"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그녀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이 보여요." 그녀가 말하였다. "그것이 보인단 말이에요. 나도 평화를 얻을 거예요."

    "당신은 평화를 얻었소." 싯다르타가 속삭이는 소리로 말하였다. (싯다르타, 164p.g 중)

    그냥… 마냥 존경스럽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냔 말이야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지? 잔잔하고 평온하지만 심장에 퍼지는 울림에 몸 전체가 떨리는 기분이다. 이 부분에서 정말 한참을… 한참을 우두커니 있었다. 책장을 넘기기는커녕 다음 문장으로도 차마 넘어가지 못하고서.


    평화를 얻고 싶었다. 오랫동안.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지난했다. 너무 쉽게 지쳤고 그런 내게 단념은 지나치게 간편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전부 포기하고 나니 내게 남은 게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평화를 원했다. 더는 힘들고 싶지 않았다. 아주 야트막하게 알 뿐이지만, 불교 사상에서는 삶이 고통이며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고 들었다. 이게 정말이라면 나는 불교와 그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일 성싶었다. 그만큼 내게 삶은 고통스러웠다.


    어렸을 적 꿈은 해파리, 고래, 새. 아무튼 간에 이 인간 사회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도 그런 마음이 아예 없다고는 못한다. 50억 부자가 될래, 해파리가 될래, 하면 고민할 정도로. 사회 부적응자다… 그렇다. 자본주의는 지나치게 가혹하고 사회는 불평등하며 내가 그 불평등의 수혜자라는 사실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많은 순간 자본의 착취에 가담하고 간접적으로나마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사회의 모든 것에 넌더리가 나는데 공황과 불안이 심해 광장에 나가지도 못한다. 할 수 있는 건 나 대신 투쟁하는 이들에게 소액이나마 돈을 보내면서 스스로 자위하는 일뿐이다. 사회의 일원으로 사는 데에 염증이 났다. (이렇게 쭉 적고 보니 진짜 사회 부적응자 같다… 맞긴 해.)


    이것도 저것도 고통인 내가 진정 바라왔던 것이 평화라는 사실을, 이 대목을 읽으며 불현듯 깨달았다. 동시에 위로도 받은 것 같다. 삶이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평화는 언젠가 오고야 만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설령 그것이 죽음이라는 형태를 입고 있더라도. 그리고 이 깨달음은 얼마 지나지 않은 <옴> 챕터의 두 번째 문단에서 해답을 제시하듯 길을 내보였다.

    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렇지만 어마어마하게 강한, 억센 생명력을 지닌, 끝까지 강력하게 밀어붙여 확고한 자리를 굳히는 충동들과 탐욕들이 싯다르타에게는 이제 더 이상 결코 어린애 같은 짓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는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무한한 업적을 이루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한한 고통을 겪고, 무한한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며, 그는 그들의 모든 욕정들과 행위들 하나하나에서 바로 생명, 그 생동하는 것, 그 불멸의 것, 범을 보았다. 그런 인간들은 바로 그들의 맹목적인 성실성, 맹목적인 강력함과 끈질김으로 인하여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고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싯다르타, 187p.g ~ 188p.g)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이유,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바로 생명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니까, 살아 있기에 고통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이야말로 우리를 생동하게 한다는 것.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이야기다. 나는 살아 있기에 고통스럽지만, 고통스럽기 때문에 살아 있으며 고통이 나를 살게 한다. 고통스럽게 살아내는 우리는 그 자체로 사랑할 가치가 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저 대목은 문단이 상당히 두꺼운데, 그 문단을 통째로 밑줄 치고 싶었다. 되짚는 지금도 코가 찡해질 만큼 내게는 크게 와닿았다. 좋았다… 좋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싯다르타라고 자신 있게 답하게 되었을 정도로 좋았다. 고전에는 낭만과 감동과 교훈이 있다… 얘들아 그러니까 우리 같이 고전 읽자.


    싯다르타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세문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둔 건 많은데 완독한 건 별로 없다. 열심히 읽어야지. 나는 젊은 작가보다는 고전이 조금 더 취향인 것 같다. 고전이 고전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잖아. 싯다르타는 그 "이유"를 내게 몹시 명확히, 아주 명징하게 알려주었다.


    뇌를 지지고 싶어서 무턱대고 후기 쓸 책 없나 찾다가 시작한 글이었는데, 덕분에 마음이 조금 더 풍족해진 기분이다. 싯다르타를 고르길 잘했어. 마음이 자꾸만 갈라지고 삶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