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하기 싫어서 후기 쓴다… 아… 저를 할 일에서부터 구제해주세요 #제발
그렇지만 언제 한번쯤 써보고 싶다고도 생각했어
이 아래로는 당연하지만 황금의 유산 7.4에 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된다…라고 써놓긴 했지만 썸네일 이미지부터가 7.4 후기라고 강하게 피력하고 있으므로 그냥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디아스포라를 강하게 경험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겪어보지 않은 사람도 아님. 개인적으로 집과 머무는 장소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고, 이건 어렸을 때도 똑같았다. 나의 미약한 디아스포라는 여기서 온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3학년~4학년 때쯤에 부모님 따라 미국에서 잠깐 산 적이 있다. 길지는 않았고, 한 2년 정도. 고작 2년 가지고 뭔 디아스포라냐 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적응을 간신히 마치자마자 한국에 돌아와야 했던 내가, 이후로 두 번의 전학을 거친 이후에도 "미국에서 온 전학생"이라는 호칭으로 불렸어야 하는 내가 느꼈던 괴리감과 불편감은 디아스포라로밖에 설명하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라면… 더 옳은 단어를 알려주시길. 나는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을 주장하고자 하는 게 아니므로.)
사실 나는 7.4가 너무 좋았어서 이게 호불호가 갈릴 이야기일 줄 몰랐다. 그런데 갈리더라고(신기한 일입니다). 쿠루루가 공감이 안 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음… 거기서 내가 느낀 건 지식과 경험의 한계였다.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체험하지 않는 이상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 그 몰이해의 벽을 넘는 "초월하는 힘"을 지닌 빛의 전사로 파판14를 내내 플레이해온 당사자들이 그렇게 무심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이해가 안 되고 공감이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특정될까 봐 명확히 옮기지는 않겠으나 상당히 부정적인 발화였고, 그건 곧장 쿠루루의 디아스포라에 공감했던 사람들을 공격할 여지 있는 문장이었다) 그 강한 어투를 보면서 그냥 하릴없이 슬펐다. 본인이 겪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없는 고통이 되는 게 아닌데.
궁극적으로 '나'란 무엇일까.
그러니까, 한 개인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를 딱 하나 정하자면 그게 무엇이냔 말이다.
사람에 따라 대답은 다를 것이다. 나도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7.4 얘기를 하고 있으므로, 파판14의 세계관에 국한하여 말해보자.
에오르제아에서 사람은 에테르, 그리고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생명체의 에테르는 총 세 가지로 나뉘는데, (1) 육체에 깃든 생명력 (2) 개인을 식별하는 혼 (3) 경험을 담당하는 기억 이 세 가지로 분류한다고 한다. 갑자기 이게 웬 세계관적 이론이냐 싶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쿠루루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에 아주 핵심적인 요소다.
쿠루루는 어렸을 적 9세계에서 원초 세계로 보내진 존재다. 그는 라라펠이었고, 그를 키운 조부 발데시온과는 외관적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아무리 샬레이안이 유학가들의 도시라고 한들 가족 내부에서부터 외관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건 정말이지 큰 기시감으로 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쿠루루는 자신의 시작점을 찾아 헤맸고, 그 끝에 귀걸이를 발견하여 황금의 유산 여정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7.4는 바로 이 쿠루루의 의문을 해소해주는 이야기다. 쿠루루의 가족은 9세계에 버젓이 존재했다. 비록 사촌이지만, 그래도 가족이다. 쿠루루의 이모는 9세계의 어느 마을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었고, 쿠루루의 친모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쿠루루를 언제든지 받아줄 준비가 된 존재였다.
하지만 쿠루루는 최소 이십 년 간 원초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꾸리며 살아왔다.
여기서, 위에서 말했던 파판14가 정의한 사람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중요해진다. 사람을 이루는 구성 요소 중 한 가지에 "경험을 담당하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쿠루루는 지금 기억의 불일치를 겪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기억(경험) 속에서 쿠루루는 9세계에서 태어난 9세계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원초 세계에서 삶을 일궈 온 원초 세계 사람이기도 하다. 이건 경험의 충돌이다. 9세계인 동시에 원초 세계의 사람일 수가 있어? 원초 세계인 동시에 9세계의 사람일 수가 있어? 세계관 외부자인 우리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겠지만, 기억해야 한다. 다중 세계 이론은 밝혀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에메트셀크가 세계는 사실 열네 개라는 걸 밝힌 게 고작 칠흑이다.
쿠루루의 주위에는 당연하지만 "동시에 두 세계 사람"이 당연히 없는 것이다. 애당초 그런 개념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쿠루루는 맞닥뜨리고 만다. 9세계인인 동시에 원초 세계인인 자신을.
경험은 충돌하고, 기억이 불일치한다. 14가 정의한 "사람을 이루는 요소" 중 한 가지가 뒤흔들리는 것이다. 가장 근간이 위태로운데 사람이 어떻게 평온할 수가 있을까? 이건 일종의 위협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 그래서, 쿠루루가 이것을 소화하는 방식이 정말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한 장소에서 아주 길게 머물면서 디아스포라적 생각을 세월에 묻어버리는 우악스러운 방법을 사용했으므로. 사실 이것도 나의 경험이 굉장히 얕은 편에 속하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내가 나에게 느끼는 불일치감"이라는 건 사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경험 중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나"라는 정의는 모두 다르고 완전한 복제 인간이 무엇이냐는 논의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나'에게 느끼는 불편감을 어떻게 타인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여기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저기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럼 난 대체 어디 사람인 거야? 쿠루루는 이러한 고민을 깊이 하다가 이모 앞에서 "원래 세계"라는 말을 쓰고 화들짝 놀란다. 그는 자신이 9세계가 아닌 원초 세계를 집으로 느낀다는 것에 죄악감을 느끼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모의 위로에 그제야 위안을 얻는다.
"너는 어디에 있든 너고, 우리는 세계에 국한하지 않고 너 자체를 사랑한다." 이것이 7.4가 도출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파판14 세계관과 스토리상 다중 세계를 매개로 빌렸지만, 사실 조금 더 궁극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디에 있든, 어디에 살든, 무엇을 먹든, 어떤 몸을 지녔든, 너는 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극적인 너 자체를 사랑한다고.
이렇게나 다정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황금의 유산이 최애 확장팩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이야기를 7.4에 와서 해낼 줄 몰랐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지? 칠흑이 오타쿠적으로 사랑하는 확장팩이라면 황금은 나 자신, 개인이 사랑하는 확장팩이 된 것 같다. 8.0도 부디 이렇게만 같았으면 좋겠다.
칠흑, 효월 이후로 황금. 스토리에 굉장히 신경 쓰는 티가 나는 게 점점 더 보여서, 스토리와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황금이 극극극극호였던 만큼 8.0도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이렇게만 해줘. 이렇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