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봐요. 포스터

뒤돌아봐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관람일 2025-12-28
국가 프랑스
장르 영화
감독 셸린 시아마
출연 아델 에넬, 노에미 메를랑 외

리뷰

개봉한 당시에 한창 좋아하던 영화였다. 그때 당시에 워낙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어서 특히나 더 좋아했는데, 미장셴도 예쁘고 내용도 오래 생각하게 되어서 영화관에서 두세 번쯤 본 기억이 있다. 뭐 이것저것 말하기에는 시간도 늦었으니 간략하게만 말할 테지만… 다들 한번씩 봐주었으면 하는 영화다.

일단 미장셴이 너무 좋다. 전체적으로 영화 자체의 색감이 약간 빛바랜 유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의도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작중 주인공인 마리안이 유화를 다루는 화가라는 걸 생각한다면 정말 의도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고. 동시에 색감을 아주 잘 썼다는 건 등장인물들의 옷 색깔 등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치밀하다.
파랑과 빨강의 대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커비의 후기를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요약하자면 영화 시작, 현재의 시점인 마리안은 우울함을 의미하는 파란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영화 본편, 과거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붉은 옷을 입는다. 반대로 아가씨인 엘로이즈는 과거 내내 푸른 옷을 입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초록 옷을 입는 비중이 늘어난다. 옷이 등장인물들의 심경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섬세하게 설계된 장치는 비단 옷뿐이 아니다. 영화 내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라는 기표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데, 개중 가장 대표적인 의미가 사랑일 성싶다. 여자들의 축제에서, 영화 중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배경 음악이 깔리던 순간, 엘로이즈의 치맛자락에 불이 붙는다. 이후 영화 속에서 엘로이즈는 그때를 콕 집어 키스하고 싶었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불은 걷잡기 쉽지 않다. 사람이 두엇 달라붙어 불을 끄려 들었지만, 그 여파로 엘로이즈가 넘어진다. 걷잡기 힘든 사랑에 발목 잡힌 엘로이즈의 미래를 암시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마리안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그리게 될 만큼 강렬히 기억하는, 아마도 사랑을 자각한 순간이 아닐까 싶고.

표면적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대담한 영화다. 하지만 그 내부를 뜯어 살펴보면, 더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 다만 페미니즘적 메시지, 영화에서 다루는 여성상과 그들이 비판하는 남성성 권력과 가부장을 논하기엔… 지금은 새벽 다섯 시 이십사 분이고 나는 너무 지쳤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빼놓고 이 영화를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래서 표면만 살짝 핥고 지나가야겠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재해석하는 것도 그렇고, 그림에는 관습과 이념이 있지만 생명력과 존재감은 없지 않냐고 비아냥거리던 것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굉장히 도발적인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걸 처음 봤을 때보다는 온건한 관점을 지니게 된 나지만, 뭐랄까… 오랜만에 보니 상당히 강력한 메시지를 내재한 영화라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건, 역시 제목을 차지한 "뒤돌아봐요."에 관한 이야기. 서술되지 않았던 에우리디케의 자율성을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엘로이즈의 대담함이 엿보인다. 마리안은 오르페우스로, 에우리디케는 엘로이즈로 빗대어지는 이 영화 속에서, 어쩌면 엘로이즈의 마지막 말이었던 "뒤돌아봐요."는 마리안을 향한 엘로이즈 최후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서 이별이라고. 떠날 때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끝은 내가 정하겠다고.
어쩌면 그래서 나는 엘로이즈가 엔딩 장면에서 마리안을 보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질문한 것은 엘로이즈다. 마리안은 공연 내내 엘로이즈를 바라보았다. 엘로이즈는 눈을 돌리지 않았고, 따라서 마리안은 "그녀는 날 보지 못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보지 못했다는 건,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를 붙잡지 못했다는 건, 엘로이즈가 영화 중반에 "어쩌면 본인이 말했을지도 모르지. 뒤돌아봐요." 라고 말함으로써 제시했던 에우리디케의 자율성, 자유 의지를 위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엘로이즈는 선택한 것이다. 바라보지 않기를. 벅차오르는 관현악기와 함께 점점 눈물을 흘리는 엘로이즈를 보며 속절없이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멋대로 생각해도 좋지만, 나를 비난하지는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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