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못할 곳으로
리뷰
영화뿐이 아니라 이 경험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떠들면서 영화 보기라니! 너무 즐거웠어🥹 앞으로도 다른 영화들 많이 많이 봐야지. 같이. 커비 덕에 항상 즐겁다…
천공의 섬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수많은) 대표작 중 하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다(ㅋㅋ).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는 정말 대표적인 것, 이를테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만 보거나, 최신에 개봉한 작품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정도만 봤다. 개인적으로 챙겨본 건 최근의 마녀 배달부 키키랑, 예전부터 좋아했던 모노노케 히메, 이제는 기억이 잘 안 나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정도? 막상 본 건 나름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유명한 것만 몇몇 개 챙겨본 수준이라 어디 가서 말하기는 좀 부끄럽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도 알 수 있듯,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그만 좀 싸우고 더불어 살아가라. 이러한 메시지에는 미야자키 감독의 성장 배경 같은 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겠지만, 거기까지 알아보는 건 차차 하고. 우선은 이 벅차는 마음부터 풀어놔야겠다.
영화 내내 수많은 등장인물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천공의 섬인 라퓨타를 쫓는다. 라퓨타는 칠백 년 전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하늘을 떠도는 섬. 창작물에서 옛 문명이 으레 그러하듯, 현대 문명으로는 쫓아갈 수 없는 기술의 집합지였다. 라퓨타도 마찬가지다. 캐릭터들은 라퓨타에 닿기를 원하고, 결국 후반부에 가서는 직접 닿는 데에 성공하기까지 한다.
라퓨타는 하늘을 나는 존재, 즉 작중 하늘을 대표하는 존재다. 반대로 라퓨타를 쫓는 존재들, 즉 인간은 제 힘으로는 날 수 없는,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존재들이다. 즉 땅을 대표하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깊은 땅, 광산 마을에서 와 땅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존재가 있다. 바로 파즈다. 반대로, 인간 중에서 라퓨타와 가장 가까운 존재는 시타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쭉 나열한 것이 바로 이 영화다. 만난 지 고작 몇 시간, 기껏해야 며칠인 이들이다. 그들의 유대감은 기이할 정도로 짙다. 영화적 허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라퓨타로 대표되는 하늘은 결국 이상이다. 현대 인류가 닿지 못한, 그래서 원하게 되는. 인류는 라퓨타에 닿기를 원하고, 그곳에 수많은 보물, 또는 세상을 호령할 힘이 있다고 믿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인류는 본디 날 수 없다. 그들에게 날개는 허락되지 않았기에 철골과 천으로 이루어진 비행선에 몸을 의탁해야 한다. 인류는 자의로 땅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렇기에 그들은 이상과 반대된다. 즉 현실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기표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인 시타와 파즈는 어떨까? 기표는 서로에게 달라붙어 영화 내내 영향을 끼친다. 캐릭터도 매한가지다. 라퓨타와 가까운 시타는 이상을, 땅과 가까운 캐릭터인 파즈는 결국 이상과 현실이라는 의미를 대표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난 지 고작 몇 시간, 기껏해야 며칠인 두 사람이 이상하리만치 쉽게 친해지고, 또 끈끈해진 것은. 이상과 현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자라는 내내 꿈을 꿔야 한다고 배우며, 또 실제로도 꿈을 꾼다. 우리는 매 순간 파즈이며, 또 동시에 매 순간 시타가 된다. 땅에 발을 디딘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러며 소원을 바라는 순간, 우리 속에서는 파즈와 시타가 서로 손을 잡게 된다. 파즈와 시타가 동시에 우리를 대표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영화는 한층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무스카 또한 라퓨타 왕족인데, 그럼 무스카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이러한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두가 우리를 조각 내어 부풀린 것에 가깝다고. 이상을 바라는 존재, 현실적인 존재, 힘을 바라는 존재, 보물을 바라는 존재 등등. 그렇기에 비로소 라퓨타에서 일어난 비극이 더욱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대표하는 수많은 캐릭터가 제각기 이상을 향해 손 뻗다가 그른 선택을 내리고, 결국 몰락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누군가는 추락했고, 누군가는 비행선을 잃었으며, 누구는 두 눈이 먼 채로 사라졌다. 다만 이 사건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조금이나마 쟁취한 캐릭터들이 있었는데, 이 캐릭터들은 선역이라고 묶을 수 있는, 즉 '타인을 도운' 존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나치게 이상을 쫓으며 타인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몰락일 뿐이다.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만일 이상이 타인을 해치는 도구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거리낌 없이 파괴해야 한다. 시타와 파즈가 그러했듯이. 맹목적으로 쫓던 이상을 놓아주고, 서로 힘을 합쳐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망설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상을 놓아주는 순간, 이상은 뜻하지 않은 순간 우리를 지탱해줄 것이라고. 라퓨타의 커다란 나무 뿌리가 추락하는 시타와 파즈를 구해주었듯이 말이다.
어쩌면 이상은 이상에 불과할 때 가장 아름다울지 모른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막상 꿈꾸던 것을 쟁취하고 보니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고. 천공의 섬 라퓨타도 결국 비슷한 말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던 라퓨타의 정원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연주의는… 음.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유명하니까. 예쁘고 반짝이고 아름다운, 말 그대로 이상적인 정원이었던 그곳에서 인간의 발자취는 오래전 끊겼다. 칠백 년 만에 찾아온 인간들은 고요하던 라퓨타 성을 헤집고 훼손했다. 단적으로 보았을 때 이건 미야자키가 바라보는 인간의 탐욕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을 혐오하는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을 불신하는 동시에 그들을 믿는다. 모순적이지만 모두가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돌이킬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설령 이전과 다른 형태로 변모한다고 하더라도.
이것과 별개로 좋았던 건 역시 도라 할머니!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한 노년의 여성 캐릭터, 그런데 모험 활극의 주연이라니. 요즘에도 이런 세련된 캐릭터가 잘 안 나올 것 같은데. 게다가 새삼 좋았던 건, 내내 해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보물을 찾고자 했던 도라가 마지막에 라퓨타에서 훔쳐 온 보물을 꺼낼 때였다. 보물을 조금밖에 훔쳐오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 장면에서, 어쩌면 시타와 파즈 또한 도라의 보물에 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라퓨타 속 캐릭터들은 미련없이 떠났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나는 아직 여기에 남아 있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였어. 이상이나 신념에 사로잡힌 인물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때때로 이상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포기하는 순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놓아준 이상이 우리를 도와주리라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 나름의 위로와 인류를 향한 기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정말 좋았다. 오래오래 곱씹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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