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
리뷰
마녀 배달부 키키. 딱 한 번 봤다. 어제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지인 추천이었는데(고마워요), 정신 놓고 멍하니 볼 수 있을 만한 좋은 영화였다. 그런데 이후로 끊임없이 이 내용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고… 하는 생각들이 멈추지를 않는 바람에. 이럴 거면 좀 정돈해서 후기를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남긴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하는 게 좋을까. 흠… 일단, 개인적으로 나는 마녀 배달부 키키는 자아를 확립하는 시기의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게 설령 사춘기든, 낯선 타지, 타국에 나가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 사람이든 간에. 어쩌면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사람, 또는 슬럼프가 온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떠들기에 앞서, 나는 키키와 관련한 별도의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등을 포함해서. 그러니까 여기에 쓰는 건 어디까지나 내 뇌피셜이다.
영화는 대체로 두 가지의 큰 틀로 분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 기본적으로 내적 존재란 키키라는 주인공과 키키가 가진 것 — 마법, 빗자루, 검은 고양이 지지 — 이다. 반대로 외적 존재란 아직은 키키의 것이 되지 못한 것 — 새로운 마을, 비행선, 톰보의 자전거 등 — 이다. 영화를 진행하는 내내 이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눈으로 보이는 갈등이 아니더라도, 매 순간마다 내적과 외적 존재의 충돌은 키키를 끊임없이 고뇌로 몰고 간다.
돌이켜 보면 키키는 외적인 존재와 얽혔을 때, 특히 마을(도시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더 적확한 어휘일지도 모르겠다)과는 대부분 그다지 즐거운 결말을 보지 못했다. 도시에서 낮게 날다가 경찰에게 붙잡혔고, 갈 곳이 없어서 마을을 떠돌았다. 내가 특히나 집중한 부분은, 도시에서 키키가 혼자서 외적인 탈 것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전거, 히치하이킹한 자동차, 버스 등을 탔지만 모두 동승자가 있었다. 키키가 유일하게 홀로 타는 것은 내적 존재인 빗자루다.
키키의 빗자루는 마녀로서의 아이덴티티의 일종이다. 마법과 비행 또한 그렇다. 지지도 마찬가지다. 내적인 존재들은 결국 나를 구성하던 자아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던 빗자루는 부서지고, 비행 마법은 쓸 수 없게 되며, 지지와는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애당초 모험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즉 외적 존재와 엮이는 순간부터 일어난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고난은 벌어졌으므로 남은 건 순응하는 일뿐이다. 인제와서 돌아갈 수도 없고(애당초 날 수 없는데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야?), 어머니와의 접점은 영화 내내 초반부를 제외하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온전한 나의 편처럼 느껴졌던 지지마저 외부 존재, 외적 존재 중 하나인 도시 고양이와의 연애에 눈이 팔리더니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 이것이 키키가 맞닥뜨린 시련이다.
이 시련을 넘어서는 건 결국 키키의 몫이다. 영화는 키키가 시련을 넘어서도록 조성한다. 비행선에 매달린 톰보가 바로 그 장치다. 시련을 맞닥뜨린 상태에서 키키는 톰보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안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내적 존재가 모두 흐려진 지금, 키키는 마녀라기보다는 도시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톰보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날아야 한다’.
그 상황에서 키키는 대걸레를 선택한다. 도시 사람, 즉 외적 존재가 들고 있던 외적 존재를 흡수하여 자신의 것, 내적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걸레를 타고, 잃어버렸던 비행 능력을 도로 쟁취해 내고, 그렇게 톰보를 구출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키키는 조금 더 뒤섞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내적 존재는 나다. 외적 존재는 현실이다. 나는 나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어느 순간 우리는 현실에 뒤섞여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나를 잊게 된다. 말하자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적 존재로 무장했던, 자기 자신에 불과했던 키키가 도시에서 처음 맞닥뜨린 현실에 순간적으로 자신을 잃었다가 회복한 것처럼.
낯선 환경에서 적응한다는 건 즉 본래의 나를 일부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환경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물론 잃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떨어져 나간 부분을 채우는 또 다른 존재/물질/기억 등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과거의 내가 가졌던 것과 일치하지 않으며, 동일하지도 않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보기에도 충분히 열려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본 관점도 수많은 해석 중 일부겠지… 그렇지만 자아 찾기 대장정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 참 좋았다. 응. 엄마의 빗자루를 받았던 초반과 스스로 대걸레를 선택한 키키의 대범함이 참 좋다.
별개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은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었다. 비행이라는 건 결국 키키의 자아를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였는데, 그걸 톰보를 포함한 친구들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정말로 어느 정도 둥지를 튼 느낌이랄까. 참고로 제목은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에서 따왔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쪽도 이쪽도 자아 확립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데미안을 언제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나중에… 한두 번 더 보고서 조금 더 정제된 후기를 쓰고 싶긴 하다. 책은 되짚을 수 있는데 영화는 그러기가 영 쉽지 않아서. 게다가 오늘은 상태도 막 메롱이다(ㅠ). 아무튼 좋았다는 마음을 간직이나마 하기 위해서 짧게 후기를 남긴다. 25일에는 커비랑 라퓨타 보는데 그것도 기회가 된다면 후기를 남기고 싶다.
키키야 행복하거라
나도 행복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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