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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FF14
    2026-02-03

    내가 나라는 정의

    황금의 유산 7.4 후기
    5
    관람일 2026-02-03
    국가 일본
    장르 FF14
    감독 요시다 나오키
    출연 빛의 전사, 새벽의 혈맹 외

    리뷰

    할 일 하기 싫어서 후기 쓴다… 아… 저를 할 일에서부터 구제해주세요 #제발


    그렇지만 언제 한번쯤 써보고 싶다고도 생각했어


    이 아래로는 당연하지만 황금의 유산 7.4에 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된다…라고 써놓긴 했지만 썸네일 이미지부터가 7.4 후기라고 강하게 피력하고 있으므로 그냥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디아스포라를 강하게 경험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겪어보지 않은 사람도 아님. 개인적으로 집과 머무는 장소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고, 이건 어렸을 때도 똑같았다. 나의 미약한 디아스포라는 여기서 온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3학년~4학년 때쯤에 부모님 따라 미국에서 잠깐 산 적이 있다. 길지는 않았고, 한 2년 정도. 고작 2년 가지고 뭔 디아스포라냐 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적응을 간신히 마치자마자 한국에 돌아와야 했던 내가, 이후로 두 번의 전학을 거친 이후에도 "미국에서 온 전학생"이라는 호칭으로 불렸어야 하는 내가 느꼈던 괴리감과 불편감은 디아스포라로밖에 설명하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라면… 더 옳은 단어를 알려주시길. 나는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을 주장하고자 하는 게 아니므로.)


    사실 나는 7.4가 너무 좋았어서 이게 호불호가 갈릴 이야기일 줄 몰랐다. 그런데 갈리더라고(신기한 일입니다). 쿠루루가 공감이 안 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음… 거기서 내가 느낀 건 지식과 경험의 한계였다.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체험하지 않는 이상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 그 몰이해의 벽을 넘는 "초월하는 힘"을 지닌 빛의 전사로 파판14를 내내 플레이해온 당사자들이 그렇게 무심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이해가 안 되고 공감이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특정될까 봐 명확히 옮기지는 않겠으나 상당히 부정적인 발화였고, 그건 곧장 쿠루루의 디아스포라에 공감했던 사람들을 공격할 여지 있는 문장이었다) 그 강한 어투를 보면서 그냥 하릴없이 슬펐다. 본인이 겪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없는 고통이 되는 게 아닌데.


    궁극적으로 '나'란 무엇일까.


    그러니까, 한 개인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를 딱 하나 정하자면 그게 무엇이냔 말이다.


    사람에 따라 대답은 다를 것이다. 나도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7.4 얘기를 하고 있으므로, 파판14의 세계관에 국한하여 말해보자.


    에오르제아에서 사람은 에테르, 그리고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생명체의 에테르는 총 세 가지로 나뉘는데, (1) 육체에 깃든 생명력 (2) 개인을 식별하는 혼 (3) 경험을 담당하는 기억 이 세 가지로 분류한다고 한다. 갑자기 이게 웬 세계관적 이론이냐 싶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쿠루루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에 아주 핵심적인 요소다.


    쿠루루는 어렸을 적 9세계에서 원초 세계로 보내진 존재다. 그는 라라펠이었고, 그를 키운 조부 발데시온과는 외관적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아무리 샬레이안이 유학가들의 도시라고 한들 가족 내부에서부터 외관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건 정말이지 큰 기시감으로 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쿠루루는 자신의 시작점을 찾아 헤맸고, 그 끝에 귀걸이를 발견하여 황금의 유산 여정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7.4는 바로 이 쿠루루의 의문을 해소해주는 이야기다. 쿠루루의 가족은 9세계에 버젓이 존재했다. 비록 사촌이지만, 그래도 가족이다. 쿠루루의 이모는 9세계의 어느 마을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었고, 쿠루루의 친모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쿠루루를 언제든지 받아줄 준비가 된 존재였다.


    하지만 쿠루루는 최소 이십 년 간 원초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꾸리며 살아왔다.


    여기서, 위에서 말했던 파판14가 정의한 사람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중요해진다. 사람을 이루는 구성 요소 중 한 가지에 "경험을 담당하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쿠루루는 지금 기억의 불일치를 겪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기억(경험) 속에서 쿠루루는 9세계에서 태어난 9세계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원초 세계에서 삶을 일궈 온 원초 세계 사람이기도 하다. 이건 경험의 충돌이다. 9세계인 동시에 원초 세계의 사람일 수가 있어? 원초 세계인 동시에 9세계의 사람일 수가 있어? 세계관 외부자인 우리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겠지만, 기억해야 한다. 다중 세계 이론은 밝혀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에메트셀크가 세계는 사실 열네 개라는 걸 밝힌 게 고작 칠흑이다.


    쿠루루의 주위에는 당연하지만 "동시에 두 세계 사람"이 당연히 없는 것이다. 애당초 그런 개념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쿠루루는 맞닥뜨리고 만다. 9세계인인 동시에 원초 세계인인 자신을.


    경험은 충돌하고, 기억이 불일치한다. 14가 정의한 "사람을 이루는 요소" 중 한 가지가 뒤흔들리는 것이다. 가장 근간이 위태로운데 사람이 어떻게 평온할 수가 있을까? 이건 일종의 위협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 그래서, 쿠루루가 이것을 소화하는 방식이 정말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한 장소에서 아주 길게 머물면서 디아스포라적 생각을 세월에 묻어버리는 우악스러운 방법을 사용했으므로. 사실 이것도 나의 경험이 굉장히 얕은 편에 속하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내가 나에게 느끼는 불일치감"이라는 건 사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경험 중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나"라는 정의는 모두 다르고 완전한 복제 인간이 무엇이냐는 논의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나'에게 느끼는 불편감을 어떻게 타인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여기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저기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럼 난 대체 어디 사람인 거야? 쿠루루는 이러한 고민을 깊이 하다가 이모 앞에서 "원래 세계"라는 말을 쓰고 화들짝 놀란다. 그는 자신이 9세계가 아닌 원초 세계를 집으로 느낀다는 것에 죄악감을 느끼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모의 위로에 그제야 위안을 얻는다.


    "너는 어디에 있든 너고, 우리는 세계에 국한하지 않고 너 자체를 사랑한다." 이것이 7.4가 도출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파판14 세계관과 스토리상 다중 세계를 매개로 빌렸지만, 사실 조금 더 궁극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디에 있든, 어디에 살든, 무엇을 먹든, 어떤 몸을 지녔든, 너는 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극적인 너 자체를 사랑한다고.


    이렇게나 다정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황금의 유산이 최애 확장팩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이야기를 7.4에 와서 해낼 줄 몰랐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지? 칠흑이 오타쿠적으로 사랑하는 확장팩이라면 황금은 나 자신, 개인이 사랑하는 확장팩이 된 것 같다. 8.0도 부디 이렇게만 같았으면 좋겠다.


    칠흑, 효월 이후로 황금. 스토리에 굉장히 신경 쓰는 티가 나는 게 점점 더 보여서, 스토리와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황금이 극극극극호였던 만큼 8.0도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이렇게만 해줘. 이렇게만…

  • 5
    게임
    2026-01-22

    집으로

    5.0 후기
    5
    관람일 2026-01-22
    국가 일본
    장르 게임
    감독 요시다 나오키
    출연 빛의 전사, 새벽의 혈맹 외

    리뷰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건 확실하다.


    칠흑의 반역자는 오타쿠라면 싫어하기 힘든 확장팩이라고들 알고 있었어서 처음 밀 때도, 두 번째 밀 때도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그 기대를 정말 완벽하게 충족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를 반긴다… 칠흑은 진짜 어떻게 만든 거냐? 이상하다 너네 파판14팀 아니지 잠깐 접신했던 거지(미안)


    스토리적으로 좋았던 부분. 낭비되는 캐릭터들이 없다. 특히 NPC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게 확 느껴진다. 다른 확장팩들보다도 칠흑이 NPC들 사용에 조금 더 세심한 편인데, 모브가 아닌 조연 수준이 된다면 스토리에서 다들 무언가를 해낸다. 빛의 전사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제 발로 뚜벅뚜벅 나아간다. 당장 생각나는 NPC만 하더라도 차이 부부, 카이 시르, 붓을 주었던 화가, 조선소 사람들, 기타 등등… 허투루 쓰이는 캐릭터가 하나 없다. 한번 등장한 이상 정말 골수까지 빨아먹겠다는 의지까지 엿보일 정도로 철저하게 짜여 있었다.


    두 번째로는 새벽의 혈맹 캐릭터성. 이건 아마 다들 공감할 이야기일 텐데, 새벽의 혈맹 일원들이 칠흑에 와서 캐릭터성이 확 살아났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P)… 여기서 살아난 캐릭터성이 효월과 황금까지 쭉 이어지는 걸 보다 보면 감회가 새롭고 기분이 짜릿하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런다. 그래 얘들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혜자는 에메트셀크(하데스)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조금씩 갈리던데, 나는 극호. 자세한 건 이후에 첨언하겠다.


    세 번째는 연출. 카메라워크와 음악 연출에 본격적으로 힘을 주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느껴질 만큼 홍련에 비해 연출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나는 진짜 칠흑 만들 때 제작진들 사이에서 무슨…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함…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홍련 다음에 이런 대작을 만들지? (홍련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안티까지는 아닙니다 그냥 순수하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무조건적으로 칠흑 올려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내 눈에는 완성도가 정말 훌륭했고, 그 완성도에는 훌륭한 연출이 빠질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출 중 하나는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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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과 빛의 대결이었잖냐고 완전히… 새벽의 혈맹 일원이 흑백으로 변하면서 어둠에 잠식되는 와중에… 꽂히는 한 줄기 빛… 어둠에 사로잡혔다가도 그 어둠을 기어코 뚫어내는 한 줄기 빛 이 연출을 보고서 대체 어떻게 가슴이 벅차지 않을 수 있느뇨… 적어도 나는 모른다 나는 과몰입 인간이라서(하!)


    칠흑은 결국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에메트셀크는 뭐 말할 것도 없고(미련 뚝뚝 넘치는 영감은 그렇게 해저에 가짜 집을 만드는 지경에 이르고…) 1세계 사람들은 세상이 망해가는 탓에 본인의 거처를 최소한 한번씩은 잃었다. 비록 새로운 곳에 정착했다 하더라도 하늘을 뒤덮은 빛이 있는 한 그들은 영원히 도망자였을 테다. 에메트셀크의 말을 빌리자면, 빛 아래서 그들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죄"였다. 그래서 죄식자였던 거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죄라면, 산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고, 그 죄인을 잡아먹는 것이 죄식자니까. 그리고 죄인이 있는 곳은 감옥이지 집이 아니다. 빛 범람에 뒤덮인 1세계는 말하자면 감옥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둠의 전사 일행은 모험을 거듭하며 에메트셀크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살아 있는 것은 죄가 아니다." 테슬린 에피소드에서 그게 제일 명확하게 수면 위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것들 중에서 가치 없는 건 없어." 결국 두 이야기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살아도 된다고. 당신은 가치가 있고, 당신의 삶은 죄가 아니니, 살라고.


    그런데 기 위해선 의식주가 필요하다. 먹고 입을 것은 대체로 자력으로 해결 가능하다. 그러나 사는 곳은 불가능하다. 지금 그들을 위협하는 건 특정한 공간이 아닌 세계 그 자체니까.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제각기 맞서 싸운다. 이 부분이 좋았다. 빛의 전사(어둠의 전사라고 해야 하나?) 일행만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NPC들은, 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제각기 살아남기 위해, 살기 위해, 희망이 이어지는 세계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다. 강력한 영웅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대신 자력으로 자신들이 있을 곳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우리의 적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씨엔 에메트셀크. 만이천 년의 집을 그리워하는 존재.


    선역과 악역이 명확히 나뉜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신념과 신념이 맞부딪히는 서사이기도 하다. 에메트셀크는 우리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결론은 항상 같다. 우리에게는 살 자격이 없다는 것. 우리가 살아남고자 하는 그 자체가 죄라는 것.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를 보았으니까. 에메트셀크 입장에서 우리는 기껏해야 개미인 거다. 어린애가 아무 가책 없이 개미를 손으로 뭉개는 것과 사람이 죽는 것, 에메트셀크에게 이 두 가지에는 큰 차이가 없다.


    누구는 에메트셀크를 소위 말하는 "세탁"해서 싫다고도 한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어떤 입장에서 본다면 에메트셀크한테도 사정이 있었어~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 하며 그가 저지른 죄를 가볍게 만드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와는 별개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에메트셀크는 결국 캐릭터다. 악역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건 현실에서의 이야기다. 서사 없는 캐릭터는 존재할 수 없고, 만일 존재하더라도 지나치게 일차원적이게 된다. 매력적인 악역은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작법의 가장 기초 중 하나다. 이런 면에서 에메트셀크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실행했다. 그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이며, 자신만의 굽힐 수 없는 신념이 있고, 그랬기에 빛의 전사 일행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칠흑은 선역이 악역을 처벌하는 이야기보다는 신념을 가진 두 존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서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존재들, 그러나 집을 공유할 수는 없는 존재들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동시에, 그리움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행동하는 이야기였다고. 그런 의미에서 수정공은 모든 NPC를 대표하는 존재라는 상징성이 크지 않을까 한다… 그야말로 과거에서 온, 그리움에서 멈추지 않고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 다다른 사람이니까.


    좋다… 진짜 좋다. 진짜 너무 좋았다… 에메트셀크는 끝까지 자신은 현 인류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으면서 현 인류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맡겼다는 것, 현 인류에게 분명히 영향을 받은 구석이 있었다는 것… 그는 뛰어난 악역임과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 존재였다는 것… 그러나 동시에 동포를 그리워한 하나의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 에메트셀크와 우리(=빛의 전사 일행)는 결국 같은 것을 지키려 했다는 것… 아 그냥 너무 좋다 미친


    원 브링즈 셰도우 원 브링즈 라이트다…

  • 4.5
    게임
    2025-10-28
    1

    기억력 개복치의 황금 여정

    FF14 ~7.3 후기
    4.5
    관람일 2025-10-28
    국가 일본
    장르 게임
    감독 요시다 나오키

    리뷰

    어디서부터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일단 앞서 말하자면 나는 황금(7.0~7.3)이 극호였다. 그냥…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지 나는 남들이 지루했다는 왕위계승전도 너무너무 재밌게 한 사람이라서… 게다가 라마티의 성장 서사를 보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그 애가 그렇게 분투하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정말 의젓한 한 나라의 왕으로 성장한다는 게… 물론 왕정인제 어떻게 남의 나라에 군대가 같은 생각이 아예 안 든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성장 서사 전부를 붐따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황금의 유산은 내내 죽음과 앎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고 생각함. 며칠 전에 트위터에서 황금에서는 주제 의식이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칠흑이나 효월만큼이나 명징한 주제부를 가지고 있으나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상당히 은유적이고 간접적이라서 단숨에 알기 어려울 뿐이라고 봅니다. 사실 창작물을 바라보면서 이 물체의 기의가 뭐고 이 기표는 무엇을 상징하고… 이러면서 보는 사람들은 드물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요(뭐 트위터야 그런 사람들이 천지삐까리지만 대체로 큰 폭에서 봤을 떄… 아닐 시 님이 맞음), 나한테 황금은 표면만 겉핥기해도 충분히 즐겁지만 그 내부를 파고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지는 그런 종류의 스토리였음.

    최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은데, 알고 지내던 지인이 타계하셨다. 사실 그래서 7.0을 새로이 밀면 또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함(하지만 워낙 긴 여정이라 아직은 완주할 자신이 없어요). 7.3을 보면서 거듭 언급되는 죽음과 두려움, 회피와 삶 같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좀 울었다. 한동안, 정말 한동안 그런 비슷한 생각들을 너무 많이 했었음. 사람은 너무 단숨에 죽는다. 그걸 깨닫는 순간 삶이라는 건 지나치게 덧없게 느껴진다.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걸 모사한 공허함이 지속되었는데(다행스럽게도 나는 상담을 받는 중이었던지라 토로하며 비교적 빠르게 벗어난 것 같음) 이 지점을 황금의 유산이, 특히 7.3이 콕 집어서 말해준 것 같았다. 죽지 않는 인물들의 세계를 황금향이라고 일컫는 것도 좋았다. 정말 눈부시게 찬란했던 황금향에서 불이 다 꺼진 황폐한 잔해들을 지나, 온전히 자연스러운 황금으로 돌아가는 그 여정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사실 황금이라는 소재는 창작물에서 유구하게 인간 욕심과 그에 얽히는 덧없음을 상징하는데(일례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호빗 속 드워프왕이 아닐까 싶다), 이것을 죽음이 가지는 의미와 훌륭하게 얽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죽음을 초월한 곳이었던 황금향, 언로스트 월드는 그 자체로 인간의 욕심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본편에서 은은히 깔려 있던 죽음에의 비유는 칼릭스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수면 위로 드러난다. 사실 나도 개인적인 시선에서는 칼릭스가 그다지 설득력 있는 빌런으로 보지는 않지만, 그와는 별개로 칼릭스가 가진 사상은 그를 작품을 굴러가게 하는 동력으로는 충분하다고 느낀다(하지만 동력일 뿐 빌런, 그것도 빛의 전사의 대적자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생각함). > 이건 생각이 좀 바뀌긴 했네요 일부러 그렇게 조성된 것 같음 칼릭스는 죽기 싫은 어린아이에서 탈피하지 못한 존재니까 (25.12.06)

     칼릭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다. 그는 인간 종의 진화니 뭐니 하지만 가장 단순하게 보자면 그냥 본인이 죽기 싫은 것이다. 숭고한 목적(인류의 진화)으로 겉을 포장했지만 사실 그는 죽음이 불합리하다고 여기며, 7.3 스토리 내내 언급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는데, 태생적으로 몸이 약했다는 서술로 보아 우리는 그가 어린 시절 내내 죽음에의 공포에 시달렸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즉, 칼릭스는 영원인으로 사백 년을 살았으나 아직도 육체의 죽음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힌 어린애라는 것이다(이런 어린 면모는 부수라고 했지 방어한다고는 안 했어 등의 유치한 대사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칼릭스는 결국 7.3에 등장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인물(모브라고 불리는 그들)의 대변자다.

    여기서 좋았던 점. 솔루션 나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직접 설득하고자 한 건 빛의 전사 일행이 아니다. 빛의 전사는 황금의 유산 본편&외전 내내 상당히 방임적인 태도를 취했는데(사실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고 보이기는 하다. 나는 극호), 이는 스토리에서 일개 개인들이 나서는 때에도 마찬가지다. 황금의 유산 내내 빛의 전사는 유력한 주인공이 아니다. 글로 비유하자면 이것은 일인칭 시점이 아닌, 일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이다. 빛의 전사는 투랄 대륙과 알렉산드리아에 이방인으로 존재하며, 그렇기에 스토리 중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밀접하게 엮이면서도 그 대상자가 될 수는 없고, 대상자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결국 스토리는 진행해야 하며, 누군가는 자신을 가로막는 시련을 타파해야 한다. 빛의 전사가 이방인이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없을 때, 시련을 극복하는 건 누구의 몫인가? 7.3은 결국 그 대상자가 모브라고 비추며, 동시에 우리(빛의 전사 폴리곤이 아닌, 그것을 다루는 우리라는 개인), 즉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빛의 전사가 아니다. 세상을 몇 번씩 구하고,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는 초월자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들 세계의 모브, 평범한 사람에 가깝다. 그러나 이방인인 빛의 전사와는 달리, 우리는 분명히 그 세상에서 살아 숨 쉬고, 그곳은 우리가 구성하는 세계이며, 그렇기에 이 죽음의 공포라는 거대한 시련에 맞서고 이겨내야 할 대상도 우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는 우리의 세계니까.

    너무 현실감 있는 소재를 선택해 놓고 해결책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읽은 적 있다. 동의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적정 수준의 이상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상은 사람을 나아가게 한다. 사람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고, 결국 상황을 타파할 힘을 부여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것이 스토리의 맹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창작물에서라도 이상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창작물에서 본 이상을 일부라도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노력한다면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결국 빛의 전사는 스토리 내외적으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죽음에 누구보다도 밀접한 존재지만, 그만큼 초월자이기에 평범한 범인들의 공포에는 잘 공감하지 못하도록 조성되어 있다(개개인이 부여한 캐릭터성이 아니라 구성적으로 보았을 때, 빛의 전사는 그래야만 한다. 칠흑을 예시로 들자면, 죽기 무섭다고 도망간다면 세계는 누가 구하나?). 하지만 평범한 존재들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빛의 전사는 초월하는 힘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무엇이든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그를 스토리에 배타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무언가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사람은 그것을 더는 미워할 수 없게 된다는 주제부의 주인공을 "뭐든지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는 존재"로 설정하면 재미와 주제가 반감되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사실 이러한 구조가 게임 스토리가 되기에는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이 갈렸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좋았어… 사실 황금의 유산의 중심 주제부가 죽음이라는 사실도 나는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효월에서 제시했던 삶이라는 키워드를 잇는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효월에서 인간은 살아남았으나, 삶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뒤따른다. 그 죽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대답을 내놓은 것만 같아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새로운 시작임과 동시에 진정한 마지막이라고 느껴지는 까닭이다.

    별개로 불호인 건 스펜이 마지막에 왕이 되었다는 것… 뭐 스펜은 내내 솔루션 나인을 포함한 알렉산드리아의 대변자였으니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아쉬움은 남는다. 그냥 평범한 일원으로 지내고 싶다는 스펜의 말이 선행되었어서 더 그런 듯. 그리고 굴루쟈한테 새 옷 좀 줘라 애가 옷이 그게 뭐냐? 좀 이쁘장한 것 좀 입혀줘 거참… 이외에도 이것저것 불호인 포인트는 많았지만 구태여 일거수일투족 말할 기력은 없다… 좋은 것만 말하기에도 부족한 기력이니까… 호불호가 상당히 많이 갈리는 확장팩이라지만 나는 정말, 정말로 좋았고(칠흑이나 효월보다도 더), 그렇기에 내가 느꼈던 감상을 흔적으로 남기고자 한다. 파판14팀 화이팅…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줘 아니 사실 더 잘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